“저도 객석에 앉을 겁니다. 이토록 마음 편한 공연은 처음이에요. 여러분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 으하하하!”
‘데뷔 65주년 헌정 공연’을 후배들에게 선물받는 가수 윤항기. 30일 청재킷과 청바지를 동시에 입는 일명 ‘청청 패션’으로 나타난 그는 “헌정 공연을 은퇴 신호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전 죽을 때까지 계속 음악을 할 것”이라고 했다. /최기웅 기자
지난 30일 오전 서울 중구에서 푸른 청바지 차림의 가수 윤항기(85)가 호방한 웃음을 터뜨렸다. 윤항기의 데뷔 65주년을 기념하는 헌정 공연 ‘여러분 덕분에 나는 행복합니다’ 개최를 알리는 간담회 자리였다.
그의 양옆 자리는 가수 조항조(73)와 유현상(73)이 호위 신장(神將)처럼 든든히 채웠다. 10월 24일 오후 6시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조항조와 유현상을 비롯해 장미화, 김수희, 전영록, 인순이, 최희선, 소찬휘 등 후배들이 윤항기의 히트곡들을 새롭게 부른다. 공연명은 윤항기의 대표곡인 ‘여러분’과 ‘나는 행복합니다’에서 따왔다.
낭만가객 최백호는 윤항기만을 위해 직접 작사·작곡한 헌정 신곡 ‘이 나이에도’를 처음 공개한다. 공연 수익 일부는 다문화 학교와 기아 대책 등에 기부한다. 윤항기는 “본래 올해가 데뷔 67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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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부터 준비했지만 제 건강 문제 등으로 미뤄진 공연”이라며 “저 또한 후배들 노래를 객석에서 즐길 예정인데, 정말 과분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조항조는 “선배님과 한 무대에 서는 건 우리 음악의 뿌리와 역사를 보여드리는 일”이라고 했다.
윤항기의 음악 인생은 한국 대중음악 발전사와도 겹친다. 1959년 작곡가 김희갑이 악단장으로 있는 미8군 ‘에이원 쇼’로 데뷔했다. 그는 “1959년 12월 25일 서울 삼각지의 미8군 클럽”으로 데뷔 날짜를 생생히 기억했다.
1964년에는 키보이스를 결성해 ‘한국의 비틀스’란 수식어를 얻었다. 같은 해 발표한 독집 앨범 ‘그녀 입술은 달콤해’는 국내 최초의 록 그룹사운드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윤항기는 필리핀의 선스팟이라는 쇼팀이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한 공연을 보고 “저거다 싶었다”고 했다. “드럼 살 돈이 없어 청계천 고물상에서 밴조(컨트리 기타의 일종)와 무당이 쓰는 바라(심벌즈와 유사한 악기)를 구했고, 세숫대 받침대에 용접으로 붙여 드럼처럼 쳤다”면서 “때마침 비틀스 열풍과 맞물려 당시 키보이스가 BTS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린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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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항기가 작사·작곡하고, 그의 친동생이자 가수 윤복희가 부른 ‘여러분’은 1979년 MBC서울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지금까지 불멸의 히트곡으로 남았다.
윤항기는 “‘좋아서’가 아닌 ‘먹고 살려고’ 시작한 음악이었지만, 결국 음악이 윤항기를 지탱한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윤항기가 10세, 윤복희가 6세 때 어머니가, 5년 후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며 삶의 어려움이 찾아왔다. 남매가 일찍부터 미8군쇼에서 활동한 이유였다. 윤항기는 “남들이 가기 싫다는 군대를 해병대 군악대로 자원해서 갔다. 화성학 등을 배울 수 있는 그곳이 제겐 ‘무료 대학’처럼 보였다”고 했다.
이후 ‘윤항기와 키브라더스’를 거쳐 솔로로 전향한 윤항기는 ‘장미빛 스카프’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냈다. 1986년 ‘웰컴 투 코리아’를 끝으로 음악 활동을 중단한 뒤 30년간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신학 공부 중 자신의 음악 속 단어 ‘행복’에 대해 깊이 고민한 그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걸 누릴 때 행복하다 생각하지만 저는 정반대”라며 “저는 가난하게 태어나 부자는 못 됐어도 생각만큼은 부유하다. 진실한 행복은 남이 가져다주는 게 아닌 각자 처한 환경에서 감사할 줄 알 때 온다”고 강조했다. “슬프고 후회스런 추억들조차 돌이켜보면 큰 행복이었어요. 제 육신이 떠나도 제 음악은 남을 테니 나~는 행복합니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