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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색자의 70년 인생을 무대에 올린 1인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에 출연한 색자(왼쪽)와 구자혜 연출. 왼쪽 아래 사진은 무대에서 공연 중인 구자혜 연출(왼쪽)과 색자.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여기는 당연히, 극장 제공
중학교 때 가출해 목숨 건 ‘야매’ 시술
화장한 남자가 술 판다고 구류 살기도
가려진 소수자 향한 폭력과 한국 역사
‘최고령 현역’ 색자의 삶 통해 풀어내
무대선 끝없는 농담과 유쾌한 에너지
“타자화·대상화 경계…진솔한 언어만”
“내가 자혜한테 그랬어요. 상업적인 연극도 좀 쓰라고. 그랬더니 내 인생을 연극으로 만들어버렸잖아.”
색자(69)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연출가 구자혜(44)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구자혜가 웃음을 터뜨렸다. “제 기준에서는 굉장히 상업적인데요.”
1957년생 트랜스젠더 색자와 극작가이자 연출가 구자혜. 살아온 시간도 삶의 궤적도 다른 두 사람이 만든 연극의 제목은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다. 소외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무대에 올려온 구자혜가 한국 사회에서 퀴어로 살아온 색자의 70년 인생을 펼친 1인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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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페미니즘 연극제에서 초연된 작품은 오는 15~16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초청작으로 다시 관객을 만난다.
의 색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1/khan/14134eftr.jpg" data-org-width="1200" dmcf-mid="qE18QJXSS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1/khan/14134eftr.jpg" width="658">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의 색자.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두 사람은 5년간 이어온 인연과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놨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21년 구자혜가 연출한 <드랙×남장신사>에서였다. 무대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인 색자는 구자혜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인연은 <곡비> 등 작품을 거쳐 5년째 이어지고 있다.
구자혜는 흩어져 있던 색자의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주웠다. 빡빡머리 중학생이었던 열여섯에 무작정 집을 떠난 일, 여관방에서 목숨을 건 ‘야매’ 시술을 받았던 기억, 종로와 이태원, 일본을 오가며 업소와 밤무대에서 일했던 시간, 함께 시대를 살아낸 주변인들까지. 한 사람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예전에는 그 시기를 통으로 ‘폭력의 시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색자님과 이야기하면서 그중에서도 소수자들이 겪었던 폭력은 또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이 사람의 삶을 통해 한국 역사가 어떻게 격변했는지를 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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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장면."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1/khan/15427thuo.jpg" data-org-width="1200" dmcf-mid="Bomt0qDgT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1/khan/15427thuo.jpg" width="658">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공연 장면.
오랫동안 사회의 변두리에 존재했던 트랜스젠더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별종이 아니었다. 늘 함께 살아왔지만 외면받고 기록되지 않았을 뿐이다. 색자가 자신에게 따라붙는 ‘1세대 트랜스젠더’라는 수식어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다. “내가 무슨 1세대야. 나보다 몇살 많은 선배들이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난 지금, 색자는 ‘최고령 현역’이 됐고 그의 기억 속에는 기록되지 못한 이들의 삶까지 남아 있다.
색자의 삶에는 한국 현대사 속 소수자가 견뎌야 했던 폭력도 새겨져 있다. 1980년대에는 남자가 화장하고 술을 판다는 이유로 ‘풍기문란’으로 즉결심판을 받고 구류됐다. 무더운 여름날 숨막히는 ‘닭장차’(경찰 호송차)에 갇혀 몇시간씩 방치되기도 했다. “지금 같으면 그런 인권유린이 어디 있어. 남자가 화장하고 술 팔았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색자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가혹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으로 살기 위해 “죽음과 맞바꿀 만큼 절실”했던 시대였다.
제목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는 구자혜가 앞서 퀴어 청소년들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썼던 대사에서 가져온 것이다. 과거보다 노골적인 폭력은 줄었지만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 한 존재가 온전히 인정받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동시에 상처받지 않는 삶보다 자신으로 사는 삶을 택해온 색자의 70년 인생이 압축된 문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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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하고 너무 맞아떨어지는 거야. 찰떡같이.” 제목을 문자로 받아본 날 색자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
세련된 패션센스와 유쾌한 에너지를 가진 색자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끊임없이 농담을 던지고 관객을 웃긴다. 구자혜가 가장 경계한 것도 색자의 서사를 피해자의 이야기로 소비하지 않는 것이었다. 색자의 삶을 ‘타자화’하거나 ‘대상화’하지 않기 위해 고심했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삶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대상화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색자가 자신을 기꺼이 대상화하고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어요. 다만 타인의 이야기는 배제하고 색자의 진솔한 언어만 담으려 했죠.”
연습도 색자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첫해에는 서울 보광동 색자의 집에서, 지난해에는 색자가 머물던 부산의 모텔에서, 올해는 새로 이사한 창신동 집에서 만났다. “엄마를 닮아 음식 솜씨가 좋다”는 색자가 오삼불고기며, 제육볶음이며 상을 차려내면 함께 먹고 이야기하다 불쑥 튀어나온 기억이 대본이 됐다.
3년째를 맞는 올해 공연은 이전 공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앞선 공연이 색자 개인의 ‘미시사’에 가까웠다면 이번에는 그의 기억과 그가 통과한 시대를 교차시킨다. 구자혜는 “아카이빙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 색자님의 삶을 드러내다 보니 아카이빙이 따라오게 됐다”고 했다.
올해 색자의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50년 넘게 이어온 밤무대 생활을 끝낸 것이다. 밤무대에서는 ‘은퇴’했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됐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2016)를 시작으로 올해 <이반리 장만옥>에 출연하는 등 정극 연기에도 도전하고 있는 색자는 앞으로 연극 작업과 함께 유튜브도 개설할 계획이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고 했다.
“좌절하지 마, 나와서 뭐라도 해, 나도 생각도 못했던 연극을 하고 상도 받았어라고, 용기를 갖고 나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집을 떠나오던 열여섯 살의 자신에게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용감했다, 겁도 없이.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 색자야, 너는 훌륭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