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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옥 할머니가 13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 꼼장어거리 노상에서 손님의 주문을 받고 보리밥을 그릇에 담고 있다. 할머니는 50년 가까이 매일 아침 시장에 나와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보리밥을 팔아 왔다. 부산=최현규 기자 부산 대표 전통시장인 부전시장 초입의 꼼장어거리 노상에서 서정옥(90) 할머니가 50년째 아침마다 보리밥을 팔고 있다. 서 할머니는 새벽 4시부터 보리밥을 짓고 겉절이, 무채나물, 콩나물, 된장국, 숭늉을 준비해 오전 7시에 노.을 펼친다. 일찍 문을 여는 부전시장 상인, 채소와 수산물을 떼러 온 소매상, 청소부와 택시기사들이 노。이 펼쳐지는 곳에서 서 할머니를 기다린다. 서 할머니는 주걱으로 보리밥을 퍼 일회용 그릇에 담은 뒤 세 가지 찬을 올리고 된장국을 부어 손님에게 준다. 손님들은 서 할머니가 포대에서 꺼내 주는 목욕탕 의자에 앉거나 서서 그릇을 들고 먹는다. 모든 밥과 찬이 당일 아침 직접 마련된 이 보리밥 한 그릇 가격은 3000원이다. 서 할머니는 “나는 돈 계산은 안 하고, 날 기다리는 이들에게 아침을 줄 뿐”이라며 “다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는 여기가 천국이다. 앞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아침 가는 비가 내리는 부전시장 거리에서 서 할머니는 비닐을 깔고 앉아 보리밥을 팔고 있었다. 거동이 쉽지 않은 할머니는 바로 앞에 따뜻한 보리밥이 든 스티로폼 용기를 놔두고, 앉은 채 손이 닿는 거리에 스테인리스 국통과 반찬통을 뒀다. 그러고선 손님이 오면 뚜껑을 열고 비빔밥을 만들어 숟가락과 함께 건넸다. 보리밥을 사지 않는 이들도 주변을 지날 때 서 할머니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서정옥 할머니의 보리밥은 바쁜 부전시장 사람들의 아침을 오래전부터 지탱했다 알라딘먹튀 . 들르는 손님마다 수십년 고객임을 자랑했고, 밥상 없는 노.이건만 3000원의 가격을 고마워했다. 그릇을 비우고 일어서던 임모(64)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으신다고 들었다”며 “요새 어디서 3000원에 이런 밥을 먹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임씨는 “여기 한 그릇이 다른 식당에 가면 2인분은 된다”며 “할머니가 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근에서 ‘서반타일’을 운영하는 또 다른 단골 서계순(71)씨도 “비싼 밥이야 돈 있는 사람들이 먹는 것이고, 여긴 전부 장사하는 이들”이라며 “된장이 일미인 ‘오리지날’이고, 값싸고 맛있으니까 모두들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 할머니를 가리키며 “3000원에 이렇게 인심 쓰면 남는 것도 없을 텐데, ‘콩나물국도 퍼가고 싶으면 퍼가라’ 한다”고 말했다. 서 할머니의 보리밥집은 오전 10시면 사라지지만 한편으로는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다. 주인은 정작 정확한 연도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본인과 주변 진술은 이 보리밥이 70년대 말부터 부전시장에서 팔렸음을 입증한다. 서 할머니는 “부전역 기장역 완행열차 차비가 몇 백원일 때부터 구루마(손수레)에 밥 싣고 배추 쪼래기(겉절이) 만들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자녀들은 500원 주화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보리밥을 팔았다고 떠올린다. 처음에 500원을 받았고 물가 상승에 버티지 못할 때만 500원씩 올렸다. 서정옥 할머니가 13일 오전 부산 부산진구 부전시장 꼼장어거리 노상에서 손님에게 보리밥을 건네고 있다. 새벽에 직접 지은 보리밥에 겉절이, 무채나물, 콩나물을 올리고 숭늉도 주는데, 할머니는 3000원인 가격을 올릴 생각이 없다 바다이야기 낮 해파리 . 서 할머니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 보리밥을 지어 나오겠다고 말했다. 부산=최현규 기자 경북 상주 출신인 서 할머니는 어머니를 도와 보리밥을 짓던 자신감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실은 36년생으로서 드물게 경북 상주여중을 졸업한 재원이다. 대전전화국이 교환원을 뽑을 때 시험을 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모친과 함께 옷을 싸들고 나온 기차역에서 “아이고 엄마, 나는 안 가련다” 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이후 상주에서 농사와 살림을 돕다 스물 둘에 대구로 시집을 갔다. 부부는 부산으로 이사했고 남편은 녹음기 방문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한때는 넓은 집에 외판원 직원만 여섯을 뒀는데, 수금을 제대로 못해 빚을 떠안게 됐다. 어느덧 자녀는 넷이었다. 당시 부산 지역에서는 보리밥 식당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간판들을 보면서 서 할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매일 하던 것이 보리밥인데, 저건 내가 자신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가게세 감당할 엄두는 나지 않았고, 집 넓은 걸 믿고 무작정 보리밥을 지어 내놓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계모임 하던 부인들이 온 것을 시작으로 그 집 밥이 맛있다는 입소문이 났다. 수요가 커지자 할머니는 식재료를 사러 부전시장에 자주 나갔다. 면을 튼 상인들이 “그러지 말고 여기 가져와서 우리한테도 한 그릇 줘 보라”고 했다. 서 할머니는 “사람들 많은 데에 솥째 들고 갔던 때부터 지금까지, 길거리에 앉아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집에 있는 밥그릇과 숟가락을 다 동원하고, 솥과 된장 냄비를 손수레에 실어 직접 끌었다 pc게임 . 어려서부터 단련한 솜씨에 가게 이름은 없어도 보리밥이 유명해졌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의 영업시간, 시중보다 싼 가격이라는 장사 원칙은 그때 만들어졌다. 다들 배가 고팠고, 빨리 일터로 돌아가야 했고,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시절이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매일 새벽의 고된 보리밥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만 지나도 색이 까매지는 보리는 미리 밥을 지어둘 수 없다. 할머니는 보리를 먼저 삶은 뒤에 불린 쌀을 넣고, 불 조절을 하며 대형 솥에 밥을 짓는다. 보리밥이 끓고 뜸을 들이는 동안 무생채를 썬다. 된장 끓이고 숭늉까지 건진 뒤 보리밥을 푸는 모든 준비가 완료되기까지는 3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삶은 콩나물을 무치기 전에 찬물에 꽉 짜느라 할머니의 손가락은 마디가 굵고 모두 휘었다. 서 할머니는 그런 하루의 반복들로 네 자녀를 번듯하게 키웠다. 거동이 불편해진 2년 전부터 월요일 하루만 쉴 뿐이다. 지금은 초읍동에 ‘엄마손 보리밥’ 식당도 생겼다. 딸이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그고 아들이 밥을 배달하는 이 식당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여년 전 열자마자 “체인。을 내라”는 권유가 많았지만 장을 직접 담가야 한다는 생각에 확장하지 않았다. 서 할머니의 보리밥 구성에 생선과 찌개 등을 더해 7000원을 받는데, 가격 올리기를 주저하는 건 온 가족이 같다. “우리가 힘들면 남들도 힘들지 않겠느냐”는 게 이유다. 자손들은 서 할머니가 일궈온 삶을 자랑스러워했다. 맏딸 김미경(61)씨는 “엄마가 보리밥을 지어 빚을 모두 갚고 우리 공부도 다 시켜 주셨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은 대기업에 합격했는데, 자기소개서에 ‘할머니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배우고 싶다 모바일 야마토게임 다운로드 . 할머니가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혹시나 ‘할머니가 난전을 한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김씨는 놀랐다. 김씨는 “우리 엄마가 자랑스럽게 살아오셨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꾼 실은 비둘기호가 부전역과 기장역 사이를 1시간 걸려 가던 시절부터 KTX 다니는 지금까지, 서 할머니는 매일 부전시장에 나왔다. 50년 억척스러움의 동력 중 하나는 배려심이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상인이라기보단 자선사업가 같기도 하다. 밀양과 울산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갖고 부전시장에 나온 다른 할머니들이 다 팔지 못하고 돌아가려 하면, 서 할머니는 “느그들 시아시(씨앗) 값은 해야 할 것 아니냐”며 남은 물건을 떠안았다. 그렇게 가져온 배추 태반은 노랗게 변해 반찬으로 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의 노。은 별미 자랑하는 맛집이었다가, 안부를 확인하는 사랑방이었다가, 이윽고 서로 살피고 채워주는 나눔장터가 된다. 한 손님은 ‘귀한 것’이라며 보온병에 담아온 보이차를 따라 줬다. 다른 손님은 ‘깨끗한 것’이라며 비닐봉지 묶음을 내밀었다. 보리밥과 나물을 포장해 줄 때 쓰라는 것이었다. 서 할머니는 주변에 손짓을 하며 “10시 다 됐다. 뭐라도 줄게. 된장 갖고 가” 했다. 누군가가 “이게 부전시장 모습이다”고 말했다. -왜 오래도록 아침마다 시장에서 힘들게 보리밥을 파는가. “나를 원하니까, 자꾸 원하니까. 내가 안 갈 수가 있나. 나 믿고 오는 사람들 있잖아.” -왜 3000원을 고집하나. 더 올릴 생각은 없었나. “나는 계산 안 한다. 사람들이 ‘좀 올리지’ 해도 나는 ‘너희 밥 맛있게 해 주는 게 내 목적’이라고 말한다.” -시장에 나올 때는 어떤 마음인가. “마음이 즐겁지. 여기 나와서 젊은 여자 늙은 여자 다 같이 밥 먹고 얘기하면 얼마나 좋다고. 바다이야기 어플 여기가 천국이야.” -오십년 세월이다. 단골이 많은가. “전부 단골이지. 부전시장에 내(나) 모르는 사람 있겠나. 부산진구에 내(나) 모르는 사람 있겠나.” -앞으로도 계속 보리밥을 팔 것인가. “몸만 따라주면 해야지. 무릎이 불편해서 그렇지 다른 덴 다 괜찮다.” -매일 나오기가 피곤하진 않으신가. “사는 재미로 했지, 피곤한 건 몰라. 그만 묻고 밥이나 한 그릇 먹어라.” 자녀들은 애타게 “이제는 그만 나가시라” 말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오는 할머니를 보고 자녀들을 힐난할 시선이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 할머니는 듣지 않는다. 할머니는 단골들에게 “내가 안 보이면 죽은 줄 알라”고 말해둔 상태다. 노。은 수십년째 완벽한 상생을 이룬다. 서 할머니는 “놀러 간다”고 하고, 기다리는 이들은 “고마운 분”이라고 말한다. 편히 모셔야 효도겠지만 즐거운 일을 계속 하게 해 드리는 것도 효도다. 자녀들은 고심 끝에 규칙을 만들었다. 매일 자동차로 어머니의 부전시장 출퇴근을 책임지는 아들 김의현(55)씨는 “영하 3도 이하, 오전 7~10시 강수량 20㎜ 이상일 때는 쉬기로 하셨다”고 말했다. 서 할머니는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시장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가격은 올리지 않겠다”고 나름의 협상을 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차를 몰고 온 아들이 그릇과 우산을 정리하고 어머니를 부축해 태웠다. 다행히 빗줄기가 굵어지기 전이었다. 한 손님이 “할머니가 안 오시면 우린 갈 데가 없다”며 일어섰다. 노. 뒤쪽 ‘원조밀양산곰장어’에서 고추를 썰던 김해령(67)씨가 “새벽부터 일하는 서민들에게 얼마나 알차고 고마운 밥이냐”며 “이곳은 소박하지만 인정과 덕담이 흐른다”고 말했다. 서 할머니가 떠나는 장면을 바라보는 시장 사람들이 “백 살 넘게 사셔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이경원 이슈&인터뷰팀장 것이 보리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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