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 영우리작업장에서 어르신들이 쪽파 다듬기를 하고 있다.
노년의 행복은 누군가의 보살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며,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충청북도의 '일하는 밥퍼'와 경북 칠곡의 할머니 래퍼 그룹 '수니와칠공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노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소일거리를 통해 경제적 보탬과 사회적 관계를 얻고, 다른 한쪽에서는 뒤늦게 배운 한글로 노래를 만들며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노인을 복지의 수혜자로만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 활동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주체로 세운다는 。에서 닮았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울산에도 노인복지의 방향을 고민하게 하는 사례다.
◇충북 '일하는 밥퍼'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영운동의 한 주택가. '일하는 밥퍼 실버자원봉사' 현수막이 걸린 건물 2층 영우리작업장에 들어서자 알싸한 쪽파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100명 가까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작업대에 둘러앉아 쪽파를 다듬고 있었다. 손은 분주했지만 드라마와 가족 이야기로 웃음꽃이 피었다. 일터라기보다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다.
이곳은 충북도의 '일하는 밥퍼' 사업 현장이다. 60세 이상 노인과 취약계층이 농산물을 다듬거나 공산품을 조립하는 등 간단한 일에 참여하면 온누리상품권이나 지역화폐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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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2시간 활동하면 1만원, 3시간이면 1만5000원이 지급된다. 경제적 보탬뿐 아니라 사회참여와 성취감을 얻도록 하는 생산적 봉사활동이다.
영운동에 사는 박선자(87세) 할머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나와 세 시간 정도 일한다"며 "받은 온누리상품권으로 저녁 찬거리를 산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까 몸에도 생기가 돌고 병원에 가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최정애(82세)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한데 여기 나오면 일도 하고 친구도 사귀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거들었다.
이어 그는 "참여하는 노인들도 보람을 느끼지만 지역화폐로 지급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작업장에서는 2주마다 자리를 바꿔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도록 한다. 40분 남짓 쪽파를 다듬는 동안에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충북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1.9%로 전국 평균 20.3%를 웃돈다. 홀몸노인도 약 11만명에 달한다. 무료급식 운동에 소일거리를 결합한 '일하는 밥퍼'는 현재 도내 11개 시·군 170곳에서 주 4일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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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평균 참여자는 초기 700명에서 최근 4500명으로 늘었고, 올해 4월 기준 누적 참여자도 60만명을 넘어섰다.
다만 참여자가 늘면서 작업장과 안정적인 일감 확보가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농산물 다듬기는 계절에 따라 물량이 달라지는데, 겨울철엔 일거리 확보가 더 어렵다.
이 작업장의 소장인 이명순씨는 "경제적 도움과 자존감 회복, 사회참여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노인 스스로 사회에 기여하고 '밥값을 번다'는 인식이 자존감을 높인다"고 말했다.
▲ 경북 칠곡군 지천면 경로당에서 '수니와칠공주' 멤버들이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칠곡 '수니와칠공주'
경북 칠곡군에서는 노년의 도전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다. 평균 연령 80대 할머니들이 랩을 부르는 그룹 '수니와칠공주'다. 뒤늦게 한글을 배우던 할머니들이 직접 쓴 글을 노래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국내 방송을 넘어 해외 언론과 영화계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수니와칠공주는 지난 2023년 8월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서 한글을 배우던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올해로 창단 3주년을 맞았다.
평생 농사와 집안일에 매달렸던 할머니들에게 랩은 낯선 도전이었다. 그러나 한글 공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게 됐고, 여기에 리듬을 붙이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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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KBS '인간극장' 등 주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공연에만 머무르지 않고 저출생 극복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거나 고령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지역 행사에서는 재능기부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랩을 부르던 동료와의 이별도 겪었다. 창단 멤버 서무석 할머니가 2024년 세상을 떠나자 멤버들은 장례식장에서 생전에 함께 불렀던 랩으로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빈자리는 공개 오디션으로 채웠다. 6명이 참가한 오디션에서 이선화 할머니가 6대1의 경쟁률을 뚫고 새 멤버로 선발됐다. 정식 멤버 외에 앞으로 활동을 준비하는 연습생까지 있다는 。도 눈길을 끈다.
▲ 이명순 영우리작업장 소장이 '일하는 밥퍼' 사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 파트리차 스카브스카 감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Rap Like Grandma: Suni & 7 Princesses'로 제작했다. 이 작품은 인도 빈디아 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비롯해 밀라노·런던·베를린 등 해외 영화제에서 여성 역량강화 영화상과 모바일 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리더 박。순 할머니는 "먼저 간 친구도 있고 새로 들어온 친구도 있지만 같이 모여 랩을 하면 아직도 재미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다 같이 계속 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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