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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양 전도사가 1977년 항공서간에 써 내려간 편지. 수신인은 주선애 장로회신대 명예교수였지만 이 편지는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선배 집사 제공 1970년대 망원동은 지금의 ‘망리단길’과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곳 한강 변 저지대에는 매일 서울 곳곳에서 퍼 올린 오물을 쏟아내는 분뇨처리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흙먼지와 물안개 사이엔 종일 악취가 가득했다. 이곳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망원동 뚝방마을’에 터를 잡았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유일한 누울 곳, 뚝방마을에서 이들과 살며 복음을 전하고 생활 개선을 도왔던 이가 이상양(1942~1977) 전도사였다. 35년 짧은 생을 가난한 이들 품에서 마친 이 전도사가 투병 중 남겼던 편지가 최근 공개됐다. 이 전도사의 아들 이선배(서울시청 인재개발원) 도림교회 안수집사가 본보에 제공한 이 전도사의 자필 편지에는 절망적인 투병과 가난 속에서도 매 순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온몸으로 눌러쓴 흔적이 남아 있다. 항공서간 2장에 쓴 편지의 수신인은 주선애(1924~2022)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였다. 투병 중 며칠에 걸쳐 일상과 아픔, 자녀 출산과 주변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에 대한 감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이 전도사의 편지는 미완성으로 남았고 실제론 보내지 못했다. 이상양 전도사 모습. 국민일보DB 모바일 온라인 손오공 릴게임 이 집사는 1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폐결핵으로 투병을 시작하시고 첫 수술을 받으셨던 76년 말부터 재수술을 위해 입원하신 이듬해 2월 초까지 쓰신 편지”라면서 “편지가 ‘늘 채워 주시는 주님의 사’라는 문장에서 더 이어지지 않는데 아마도 고통이 심하셔서 계속 쓰시지 못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편지에는 고통과 감사의 감정이 섞여 있다. “늘 문에는 빨강 팻말이 붙어 전염 표시를 하여 이번에도 독방에 들어갈 텐데 수술 끝나고 깨며 다섯 사람이나 있는 일반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마음의 산실에서도 환희가 터져 나옵니다. 감사가 나옵니다. 선생님께 이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소리치도록 기쁨이 있습니다. 이제 나도 외과 일반 환자라고 결핵 환자가 아니라고 하늘에 감사합니다.” “어른 뼘으로도 두 뼘이 넘는 수술 자국이 전부 터져 버린 것입니다. 옷을 매일 갈아입어도 감당 못 할 정도로 농이 나옵니다. 무름이 무디던 이가 정히 주 앞에 무릎 꿇고 살게 합니다. 3일의 계획도, 10일 집회도, 깡그리 무너지고 자신만만하던 그 자리에 주님만 남게 하십니다.” 편지에는 온누리교회를 개척한 하용조 목사와 남진 새에덴교회 장로와의 인연도 소개돼 있다. “(76년 12월) 25일 새벽은 하용조 전도사가 버스 하나에 연예인 싣고 5시 새벽에 와서 판잣집에 라면을 주며 새벽 송을 했지요. 손오공게임 우리 교인과 연예인들이 가득 차 아침 예배를 드리고 제가 간증도 했지요.?남진이 저를 위해 425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를 불러 눈물의 시간도 있었지요. 그런데 26일부터 열이 계속 나며 식사를 통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은 주 교수가 전한 망원동 사람들이 처한 비참한 삶의 이야기였다. 72년 주 교수는 “신앙과 신학이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수업 중 소개했고 이 전도사는 자신을 던졌다. 망원동 주민이 된 그는 공동화장실을 짓고 주민들과 함께 530세대의 집도 지었다. 오물에 발을 담그고 동전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보육사업을 펼쳤다. 야학을 통해 청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줬다. 망원제일교회(홍성인 목사)의 전신인 애린교회도 설립했다. 5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결핵이 악화했다.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결국 77년 3월 23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임종 직전 주 교수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이자 능력입니다. 제가 여기 와서 병이 난 줄 아시지만 전 이미 오래전 죽었습니다. 덤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어요.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죽게 된 게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바일 바다이야기앱 이 전도사의 후배로 망원동 사역에도 참여했던 임규일 만성교회 원로목사는 “주 교수님 말씀을 따라 당시 장로회신학대 학부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따라나선 게 뚝방마을 사역의 출발이었다”면서 “(상양) 형의 순수했던 헌신이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신학도와 젊은 목회자들에게도 보여주신 소명에 따라나서는 순수한 영성이 필요하다”면서 “50년 전 뚝방마을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는 목회자 정신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편지는 유족들이 내년 이 전도사 별세 5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유족이 함께 제공한 이 전도사의 메모에도 당시 뚝방마을의 현실이 담겨 있다. 유족이 함께 공개한 이상양 전도사의 메모. 이선배 집사 제공 “방이래야 일어서서 머리에 한 뼘을 채 뻗지 못하고 앉아서 다리를 쭉 펴지 못하는 좁은 방이다. 불과 300여m 앞에서 나는 인분 냄새는 이내 나의 코를 마비시켰으며 연탄가스와 섞인 냄새는 가슴까지 조여든다. 빈민촌! 냄새와 상통하는 얘기다. 가난은 게으름을 낳는다. 그 게으름은 파멸을 가져온다.” 유족과 장로회신학대, 망원제일교회 등은 내년에 가난 극복을 위해 짧은 생을 바친 이 전도사를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추모예배는 이상양기념선교회와 장로회신학대 동문회가 주축이 돼 준비하고 있고 3월 21일 주일엔 망원제일교회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예배를 드린다. 별세 당일인 3월 23일엔 장로회신학대에서 동문과 학생이 함께 예배드린다. 절판된 이상양 전도사의 일대기 복간과 영문판 출판도 진행한다. ://foodv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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