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들! 산과 들, 계곡을 달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야. 마치 해적들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과 같지. 자연을 달리며 그 속에서 마주하는 생명들은 나에게 보물과 같은 존재들이야. 그 생명들은 나와 자연을 하나로 이어주는 존재들이지. 아빠가 이번달 산에서 달리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들려줄게.
그림=염정민(용곡초등학교 2학년 2반 11번) 작가
아빠는 최근에 원시림이라 불리는 가리왕산에 갔다왔어. '원시림'이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거든. 중봉을 거쳐 하봉으로 내려갔어. 정상 대신 하봉으로 향한 건, 거기서 꼭 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야. 마을길을 지나 좁은 숲길이 시작되었고, 곧 가파른 오르막길에 접어들었어. 다른 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큰 나무들 사이로 볕이 떨어지고 있었고, 그 볕 아래 야생화가 피어 있었어. 그리고 초록 이끼가 유난히 많았어.
아들은 이끼를 자세히 본 적 있어? 이끼는 낮게 자라는 식물인데, 하나하나 생김새가 다 달라. 이끼는 햇빛이 너무 강하면 잘 자라지 못해서, 주로 북쪽 사면에서 잘 자라. 숲에서 유독 한쪽에만 이끼가 두터우면, 그쪽이 북쪽일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이끼가 낮게 자라는 이유는 수분 때문이래. 땅 가까이 흐르는 공기는 위쪽보다 느리게 흐르고, 그 느린 공기 속에 물기가 오래 머물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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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자랄수록 더 많은 수분을 머금을 수 있지. 하지만 이런 이끼도 높게 자랄 때가 있어. 바로 포자를 터뜨릴 때지. 포자낭을 힘껏 위로 올려서, 빠르게 흐르는 바람에 포자를 실어 멀리 보내. 공기 흐름을 공부하는 것을 유체역학이라고 하는데, 이끼는 유체역학을 아는 생명 같아. 어쩌면 우리가 이끼를 통해 유체역학을 발견한 건지도 몰라. 우리가 배운 과학도, 문화도, 종교도 결국 자연에서 왔다는 걸, 너도 잊지 않았으면 해.
오르막이 이어질수록 길은 거칠어졌어. 거미줄, 덩굴 그리고 쓰러진 나무들이 앞을 막고 있었지. 그걸 헤치고 넘으며 걷는데, 진짜 모험을 하는 기분이었어. 아무도 없는 숲속을 헤집고 다니는 한 마리 야생동물이 된 기분이었어.
언제 쓰러졌는지 알 수 없는 그 나무 위엔 이끼가 가득했어. 등나무 같은 덩굴식물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면, 아무리 큰 나무라도 결국 쓰러지고 말아. 그렇게 나무가 쓰러지면 숲 전체의 공기 흐름이 바뀌고, 그 바뀐 흐름 속에서 잘 자라는 나무가 생기는가 하면, 반대로 시들어가는 나무도 생겨. 그뿐만이 아니야. 나무가 쓰러지면 그 빈 공간으로 햇볕이 들어와. 그 햇볕을 받아 야생화와 작은 관목이 자라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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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숲은 큰 나무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야. 다양한 나이의 나무와 낮은 관목, 그리고 꽃이 함께 있는 곳이야. 식물이 다양해야 그 안에 깃드는 동물도 다양해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숲은 순환하고, 계속 살아 숨 쉬게 되는 거야.
중봉 도착을 얼마 앞두고, 유독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어. 아빠는 그런 나무를 엄마 나무라고 불러. 정말 엄마 아빠의 나무라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나무보다 오래 머물렀던 나무야.
엄마 나무의 뿌리는 아주 넓게 퍼져 있어. 그 뿌리 끝은 흙 속 균과 손을 잡고, 그 길을 따라 양분이 흘러. 같은 종의 나무는 같은 균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뿌리가 더 쉽게 이어지고, 그 이어짐을 타고 엄마 나무는 자기 씨앗에서 나온 어린 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줄 수 있어.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나무는 그렇게 새끼를 돌보고 있어.
그리고 엄마 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열매를 많이 맺고 잎을 많이 떨어뜨려. 그 잎과 열매는 작은 생명들의 보금자리이자 먹이가 되지. 다람쥐와 청설모는 도토리와 씨앗을 물어다 여기저기 땅에 묻어둬. 그러곤 다 기억하지 못해서, 못 찾은 씨앗이 이듬해 싹을 틔우지. 그리고 멧돼지는 낙엽 밑을 코로 헤집으며 도토리와 벌레를 찾는데, 그렇게 헤집어진 흙은 공기가 잘 통해서 다음 씨앗이 뿌리내리기 더 좋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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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숲의 순환과 성장에 영향을 주고 있지. 그래서 숲에 있는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한 거야.
중봉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어. 그리고 숲을 오르는 동안 만났던 다양한 생명들을 떠올려봤어. 이끼와 쓰러진 나무, 엄마 나무와 다람쥐, 그리고 멧돼지가 서로 손을 놓지 않고 이어져 있는 숲. 그렇게 서로 각자의 존재를 지켜주며 하나의 숲을 이루어왔기에,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이 숲이 유지될 수 있었던 거야. 원시림은 바로 그런 곳이었어.
언젠가는 너도 자연 속을 달리며 수많은 생명을 마주하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 직접 모험을 떠나지 않으면 보물은 절대 찾을 수 없거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만날 수 있어. 내가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너도 너만의 보물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길 바라.
흙탕물 고인 웅덩이를 보면서 멧돼지가 온 몸을 굴리며 목욕했던 모습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나무줄기의 구멍을 보면서 딱따구리가 수없이 쪼아 만든 노력을 알아봐 주길 바란다. 작은 계곡은 담비의 쉼터가 되고, 넓게 펼쳐진 숲은 사슴들의 집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
*가리왕산의 하봉에는 수많은 나무가 잘려 쓰러져 있었다.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곳에는 붉은 흙과 돌만이 존재했다. 가리왕산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활강경기장 조성을 위해 벌목되었고, 경기가 끝난 지금까지도 복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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