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키럽
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김희정 옮김|문학동네|304쪽|1만9000원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편이 객관적으로 외모가 뛰어나진 않지만 배려심이 깊고 육아에 적극적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면 으레 이런 댓글이 달린다. “다정한 게 가장 섹시한 거예요.”
카리스마 있는 근육질 남성보다 이른바 ‘에겐남(섬세하고 공감력이 뛰어난 남자)’을 매력적으로 여기는 트렌드는 개코원숭이 세계에선 전혀 새롭지 않다. 영장류의 스트레스를 연구하는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스탠퍼드대 교수의 이 책에 따르면 개코원숭이 암컷은 힘센 수컷보다 다정한 수컷을 짝짓기 상대로 선호한다.
오랫동안 원숭이처럼 큰 사회 집단을 이루어 사는 영장류들의 성(性) 행동은 서열이 높은 수컷이 가장 매력적인 암컷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영장류학계에 여성 학자들이 진출하면서 남성 편향에서 벗어난 ‘암컷의 선택’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각광받고 있다. 예컨대 수컷의 선택을 암컷이 수동적으로 따를 뿐이라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개코원숭이 세계를 관찰했더니, 암컷은 다른 수컷과 싸워 이긴 수컷이 아니라 서로 그루밍해 주는 등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발전시켜 온 ‘친절한 수컷’을 선택하더라는 것. 심지어 어떤 암컷은 수컷들이 자신에게 화풀이할 위험을 무릅쓰고 커다란 몸집을 가진 위험한 수컷들을 조종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선택한 친절한 수컷과 덤불 속으로 들어가 몰래 짝짓기를 했다.
부계 유전 연구 결과 일부 종에서는 수컷 사이의 경쟁에 말려드는 대신 덤불 속에서 비밀리에 짝짓기를 하는 수컷 영장류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줄 확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스핀
. “냉철한 진화론적 계산으로도 이러한 친절함은 그저 어리석은 감상주의가 아니라 성공적 전략이다.”
저자는 또 양성 간 갈등은 두 가지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 짝짓기하는 암수는 서로 혈연관계가 아니므로 상대방과 협력해야 할 진화론적 동기가 별로 없다. 둘째, 생식을 위해 암수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매우 불평등하다. 수컷은 정자를 만들고 배출하는 데 필요한 열량만 지불하면 되지만 암컷은 임신에 필요한 신진대사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일부 생물종은 엄청난 모성 행동까지 감당해야 한다.
짝짓기가 끝나면 수컷이 암컷을 떠나는 생물의 암수 커플에서 수컷은 이번 짝짓기를 통해 태어나는 자손의 형질을 진화시키고 생존을 최대로 보장하기 위해 어떤 대가든 치르려 한다. 그 대가가 어미의 장래 생식 능력이라 해도 상관없다. 사실 암컷의 미래 생식 능력이 떨어질수록 이 수컷의 자손들이 살아남을 확률은 높아진다. 암컷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하더라도 자손을 남길 확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초파리다. 초파리 수컷 정자에는 다른 수컷의 정자를 죽이는 독이 들어 있다. 이 독은 암컷 초파리에게도 영향을 끼쳐 。차적으로 암컷의 건강을 해친다. 가장 많은 수의 자손을 보고 정자에 든 독이 가장 강한 수컷과 짝짓기를 한 암컷들은 수명이 짧아진다.
성별 경쟁은 포유류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각인 유전자(imprinted genes)’는 부모에게서 유전적 형질을 하나씩 물려받는다는 멘델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황금성오리지널
. 부모 중 한쪽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 정보만 발현된다. 각인 유전자로 분류된 유전자들은 모두 태반, 태아, 신생아의 성장과 관련된 기능을 한다. “아비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는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성장을 선호하는 반면, 어미에게서 온 유전자는 이런 사치에 저항하는 성격을 띤다. 1989년 하버드대학교의 진화학자 데이비드 헤이그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 발견되는 각인 유전자는 성별 간 경쟁의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초파리 정자를 둘러싼 전쟁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전장(戰場)이 태반이다. 태반은 모체를 침략해 생명체를 위한 영양분을 가져가는데 부계 유전자는 이 침략을 더 공격적으로 하도록 밀어붙이고, 모계 유전자는 이를 억제하려 애쓴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 약속한 부부의 유전자가 자손 번식 과정에서 치열하게 다투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이 싸움 역시 번식을 위한 것이다. 부계 유전자가 완전히 무력화되어 성장을 억제하는 모계 유전자가 아무 저항 없이 효력을 발휘하면 태반이 모체의 자궁내막을 침범하지 않는 병에 걸리고, 태아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반면 모계 유전자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하고 부계 유전자가 제약 없이 마음껏 활동하게 두면 태반이 모체를 과도하게 침입해 융모막암종이라 불리는 침습적인 암이 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태반의 정착은 불편한 대치 상태의 결과다.”
새폴스키가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 18편을 엮었다. 새폴스키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행동’(1040쪽),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648쪽) 등의 두께에 질려 차마 손대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입문서용으로 권한다. 원제 Monkeyl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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