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역사가 저물어가던 시기, 왕좌를 향한 권력의 암투가 서라벌을 뒤흔들었다. 혜공왕의 죽음과 선덕왕의 즉위로 이어진 혼란 속에서 상대등 김경신은 천하를 얻기 위한 긴 계책을 세웠다.
기이한 꿈과 엇갈린 해몽, 북천의 신에게 올린 제사, 알천을 뒤덮은 거센 물결은 마침내 한 시대의 운명을 바꾸었다. 김주원을 제치고 왕좌에 오른 김경신은 만파식적의 신비와 호국용의 전설을 통해 왕권의 신성함을 드높였다.
죽어서도 왕의 위엄을 지키려는 듯 원성왕릉에는 위풍당당한 석인상과 사자상, 정교한 십이지신상이 남아 있다. 왕좌를 얻기 위한 지략과 왕권을 지키려는 집념, 신비로운 설화가 어우러진 원성왕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되살린다.
◆신화전설 1: 왕좌의 꿈
서라벌의 밤은 깊었지만 상대등 김경신은 깊이 잠들지 못했다. 궁궐의 등불이 하나둘 꺼질 때마다 그의 가슴에서는 또 다른 불꽃이 일어났다. 혜공왕이 죽고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하기까지, 그는 피비린내 나는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아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신라의 병권을 쥐고 대신들을 움직이는 실력자가 됐지만 왕좌는 멀어 보였다.
선덕왕의 후계자로 지목된 사람은 김경신이 아니라 김주원이었다. 김경신은 웃으며 김주원을 대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날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렀다. 왕좌를 차지하려면 칼보다 치밀한 계책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밤, 김경신은 꿈속에서 머리에 쓴 관을 벗어 던졌다. 어느새 흰 갓이 머리에 얹혔고 손에는 열두 줄 악기가 들려 있었다. 발길은 저절로 천관사로 향했다. 검은 물이 고인 우물에서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몸을 숙이는 순간 우물 속으로 빠져드는데 용의 눈이 번쩍였다. 김경신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술가를 불렀다. 꿈 이야기를 들은 .술가는 얼굴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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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을 벗었으니 벼슬을 잃고, 악기를 들었으니 칼날을 만나며 우물에 들어갔으니 옥에 갇힐 흉몽이라는 것이었다.
김경신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는 대문을 걸어 잠갔다. 바깥에서는 권력을 향한 발걸음이 분주했지만 그는 며칠째 방 안에서 그림자처럼 지냈다.
그때 아찬 여삼이 찾아왔다. 여러 차례 돌려보내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침내 김경신이 그를 들였다. 꿈 이야기를 들은 여삼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아찬의 해몽은 달랐다.
관을 벗는 것은 위에 앉을 사람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흰 갓은 왕관이요, 열두 줄 악기는 왕통이 길게 이어질 징조였다. 우물은 감옥이 아니라 궁궐이었다. 죽음의 꿈이 순식간에 왕이 되는 꿈으로 바뀌었다.
김경신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러나 김주원이라는 높은 벽이 남아 있었다. 여삼은 창밖으로 흐르는 북천을 가리켰다. 그 강을 지키는 신에게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길을 열어줄 것이라 했다.
그날부터 김경신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북천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밤에는 사람을 만나고, 낮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정사를 돌봤다. 군사를 움직이는 자와 창고를 지키는 자, 궁궐의 문을 여닫는 자들이 하나둘 그의 사람이 됐다. 김주원에게는 예를 다했다. 상대가 경계를 늦출수록 그의 계책은 더욱 깊어졌다.
선덕왕의 병세가 깊어졌다. 김경신은 서두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당겨온 활시위를 놓을 순간을 기다렸다. 마침내 선덕왕이 세상을 떠났다. 김주원이 왕위를 잇기 위해 북천 너머의 집에서 길을 나서려던 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폭우가 쏟아졌다. 알천은 성난 용처럼 몸을 뒤틀며 범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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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물에 잠기고 길이 끊겼다. 김주원의 수레는 강 건너에서 멈춰 섰다.
서라벌의 대신들은 술렁였다. 왕좌를 오래 비워둘 수 없었다. 김경신은 이미 궁궐에 있었다. 그의 곁에는 군사와 대신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 하늘이 김경신을 선택했다고 외쳤다. 모든 대신들이 머리를 숙였다.
그는 천천히 용상에 앉았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이 탄생했다. 궁궐 밖에서는 여전히 빗줄기가 쏟아졌다. 김주원의 길을 막은 물결은 김경신에게 왕좌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오랜 세월 가슴에 품었던 장계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흔적: 원성왕릉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는 신라 제38대 원성왕 김경신의 무덤으로 알려진 원성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서라벌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였던 김경신은 785년 왕위에 올라 798년까지 나라를 다스렸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천200여 년이 지났지만 왕릉은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신라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원성왕릉은 괘릉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무덤 에 물이 고여 관을 돌 위에 걸어 안치했다는 전승에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실제 무덤 내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전승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현재의 무덤을 원성왕릉으로 보는 데는 주변 숭복사지와 관련된 문헌 및 금석문 자료 등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원성왕릉은 통일신라 왕릉 가운데 조형적으로 가장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둥근 봉분 아래에는 다듬은 돌로 호석을 둘렀고, 일정한 간격으로 세운 받침돌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겼다. 십이지신들은 각기 다른 무기와 자세로 무덤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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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둘레에는 난간석을 설치해 왕릉의 장엄함을 더했다.
성덕왕릉에는 별도의 돌에 새긴 십이지신상을 봉분 주변에 세웠지만, 원성왕릉에는 호석에 직접 새겨 넣었다. 왕릉을 장식하는 석조기술이 한층 발전했다.
왕릉 앞으로 내려오면 더욱 흥미로운 석조물들이 기다린다. 무덤을 향해 마주 선 석인상 네 구와 석사자상 네 구, 팔각석주 두 기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돼 있다. 이들 열 .의 석조물은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특히 무인상은 원성왕릉을 대표하는 조각이다. 깊숙한 눈매와 높은 코, 풍성한 수염, 당당한 체격은 일반적인 신라인의 모습과 차이가 있다. 두 손으로 무기를 짚고 서 있는 모습에서는 왕릉을 지키는 수호자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서역인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해석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불교의 금강역사상과 연결해 보는 견해도 있다. 신라가 당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 활발하게 교류하던 국제적인 문화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석사자상도 눈길을 끈다. 사자들은 입을 벌리거나 몸을 틀어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근육과 갈기까지 세밀하게 표현한 조각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이 드러난다. 왕릉을 지키는 위엄과 신라인의 뛰어난 조각 솜씨가 함께 담겨 있다. 성덕왕릉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신라 왕릉의 석물 배치와 장식체계가 더욱 정교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경주에서 울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목의 괘릉리 소나무 숲을 찾아가면 이러한 왕릉의 모습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왕좌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의 역사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원성왕릉의 석조물들은 통일신라 왕실의 위엄과 당시 장인들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신화전설 2: 원성왕의 권위
김경신은 오랜 계책 끝에 왕위에 올랐으나 서라벌의 밤은 여전히 편안하지 않았다. 북천의 물길에 막혀 왕좌를 놓친 김주원의 그림자가 궁궐 곳곳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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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들은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들의 눈빛까지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원성왕은 왕좌에 앉은 첫날부터 새로운 계책을 궁리했다. 칼로 얻은 권력은 더 날카로운 칼 앞에서 무너질 수 있었다. 왕에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위가 필요했다.
그 무렵 궁궐에 기이한 소문이 퍼졌다. 원성왕의 아버지 효양이 신라의 신물 만파식적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나라의 근심을 잠재운다는 신비로운 피리였다. 원성왕은 아버지가 남긴 보물을 깊은 내황전에 모셨다.
밤이면 홀로 피리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대나무의 마디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손을 뻗으면 천 년의 바람이 손끝에 닿는 듯했다. 원성왕은 신물의 존재만으로도 백성들의 마음에 경외심이 싹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느 가을, 일본에서 사신이 찾아와 비단으로 감싼 황금 상자를 왕 앞에 내려놓았다. 금 쉰 냥이었다. 만파식적을 한 번만 보여달라는 청이었다. 원성왕은 모르는 일이라며 물리쳤다.
이듬해 일본 사신은 더욱 큰 황금 상자를 들고 왔다. 금 천 냥이었다. 이번에는 피리를 잠시 빌려주기만 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대신들의 얼굴에 탐욕이 스쳤다. 천 냥의 금이면 궁궐을 새로 짓고 군사들의 무기를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원성왕은 웃음조차 보이지 않았다. 신라의 하늘과 바다가 내린 보물을 어찌 황금의 무게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왕은 피리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며 다시 사신을 돌려보냈다.
원성왕은 내황전의 문을 열었다. 달빛이 피리 위에 내려앉았다. 바람 한 。 없는데도 어디선가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마치 먼 바다의 파도가 궁궐까지 밀려오는 듯했다. 왕은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또 하나의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나라에서 온 사신 일행이 귀국길에 올랐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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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따라온 하서국 사람 두 명이 동지와 청지에서 신라를 지키던 호국용을 작은 물고기로 변환시켜 통 속에 넣고 황급히 길을 떠났다.
그날 밤, 원성왕의 꿈에 비늘이 찢긴 청룡이 나타났다. 용은 검은 물결에 몸을 감긴 채 애처롭게 울었다. 서라벌의 산천이 흔들리고 우물마다 물이 마르는 광경이 뒤따랐다. 이어 여인 셋이 인사를 하며 당나라 사신들이 자신들의 남편인 호국용을 잡아갔다고 아뢰었다.
왕은 잠에서 깨어 곧장 말을 준비시켰다. 사신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 달렸다. 호위 군사들이 뒤를 쫓았지만 왕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마침내 하양관에서 사신 일행을 따라잡았다.
원성왕의 눈길이 두 사람의 짐에 머물렀다. 작은 통 속에서 물이 출렁였다. 왕은 통을 열도록 명했다. 세 마리 물고기가 힘없이 몸을 뒤틀고 있었다. 비늘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왕은 물고기를 가까운 우물에 풀어주었다. 첫 번째 물고기가 물에 닿자 우물 밑에서 천둥이 울렸다. 두 번째가 뛰어들자 물기둥이 하늘로 솟았다. 마지막 물고기가 사라지는 순간, 세 줄기 푸른 빛이 구름을 찢으며 하늘로 올라갔다. 거대한 용 세 마리가 구름 사이에서 몸을 뒤틀었다. 그 울음에 산천이 떨리고 말들이 앞발을 들었다.
원성왕은 말에서 내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용들은 왕의 머리 위를 세 차례 돌더니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먹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우물가를 환하게 비추었다.
서라벌로 돌아온 왕은 다시 내황전을 찾았다. 만파식적은 여전히 말없이 놓여 있었다. 왕은 비로소 깨달았다. 왕의 권위는 신물을 차지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낼 때 더욱 굳건해진다는 사실이었다.
북천의 물결이 그에게 왕좌를 열어주었다면, 세 마리 용은 그 왕좌를 지켜야 할 책임을 일깨워주었다. 원성왕은 피리를 정성껏 거두고 궁궐의 문을 열었다. 아침 햇살 아래 서라벌의 지붕들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글은 문화콘텐츠 육성을 위해 스토리텔링 한 것이므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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