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교에서 창피한 실수를 하고 집에 와서는 "내일 학교에 가기 싫다"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네 생각만큼 너에게 관심이 없어."
지금은 무슨 실수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영향을 미쳤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내 삶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보는 엄마의 시선은 중요했다. 엄마는 내가 기꺼이 허락한 내 인생의 관객이었으니까.
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
<부모는 관객이다>(2020년 7월 출간)를 읽으며 어린 시절 엄마의 모습을 다시 만났다. 저자는 스스로를 '게으른 엄마'라 칭한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난 자신의 육아 방식을 이야기한다. 내킬 때가 아니면 아이와 놀아 주지 않고 학교 숙제나 학업에도 일일이 관여하지 않는다. 자기 일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아이들도 만 3세부터 자신이 흘린 것을 스스로 치웠다고 한다.
자신의 시간을 존중받고 싶다면 타인의 시간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러니 아무리 놀고 싶어도 엄마의 낮잠 시간만큼은 방해하지 말아 달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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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는 엄마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하지만 게으르다는 것이 곧 무관심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아이의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인다. 자신의 삶을 돌보는 일과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반드시 서로를 희생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듯이.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말하는 엄마와 헌신하다 지쳐 결국 화를 내는 엄마가 서로 다른 사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발견한 것은 새로운 육아법이라기보다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가능성이었다.
▲ 부모는 관객이다 ?책 표지
ⓒ 책소유
내 삶을 지키며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
나는 생후 두 달 차인 신생아를 키우고 있다. 친정엄마가 매주 우리 집에 와 육아를 돕는다. 내가 아이를 돌보는 동안 엄마는 나를 돌본다. 집에 오자마자 청소와 빨래를 해치우고 닭죽을 뚝딱 끓여 내는 엄마. 맞벌이하던 시절, 엄마에게는 우리 도시락을 챙기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하면 엄마가 해 주지 못한 일보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해 주었던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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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엄마는 누구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요리를 한다. 원래 이렇게 요리에 관심이 많았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툭 던지듯 말했다.
"해 줄 수 있을 때 해 주고 싶어서."
사랑에는 때로 희생이 따른다. 아이를 돌보느라 잠을 줄이고 생계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미뤄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런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더 많이 희생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고 더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일까.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혼자 아이를 돌보던 날이었다. .심을 대충 먹어 위장에서 소리가 나고 종일 아이를 안느라 관절은 뻐근한데 아이는 도통 잠을 자지 않았다. 베란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울고 싶은 심정으로 아이를 보는데 아이가 내 눈을 똑바로 맞추며 옹알이를 했다. 그 순간 세상에 아이와 나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힘든 것은 아이 때문이 아니라 힘든 시간이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내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준 엄마처럼 나도 아이가 내 기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의 관객이 된다는 것은 아이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나 역시 내 삶을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내게 그랬듯, 나도 아이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곁을 지켜 주고 싶다.
j.co.kr/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