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자국군을 공격한 아이티 갱단에 맞설 정예 병력을 전격 파병하면서 아이티에서 전쟁 수준의 조폭 소탕 작전이 벌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은 부켈레가 2023년 집무실에서 찍어 공개한 것으로, 소총 사격 자세를 취하며 갱단 소탕 의지를 드러냈다. /X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자국 갱단을 소탕한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를 사실상 장악한 갱단과 정면 대결에 나섰다. 아이티 치안 회복을 위한 유엔 다국적군 일원으로 파병한 자국 군인들이 갱단 공격을 받고 실종되자 특수부대 등 정예 병력을 급파한 것이다. 부켈레와 아이티 갱단 두목들 사이에서 ‘카리브해 대전’의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22~26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공항에 엘살바도르 병력과 군사 장비를 실은 항공기가 최소 12편 도착했다. 부켈레가 실종된 군인을 구조하겠다며 보낸 병력은 특수부대원 100명을 포함해 최소 450명이다. 마이애미헤럴드는 “수백 명이 더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다국적군 일원으로 아이티에서 활동하던 엘살바도르 항공기술병 4명이 갱단의 공격을 받고 실종됐다. 이들은 포르토프랭스 외곽에서 장을 보고 장갑차를 타고 주둔지로 돌아가던 중 총격을 받았다. 갱단은 차량을 포위해 총탄을 퍼부은 뒤 불을 질렀다. 사흘 뒤 부켈레는 실종자 구출을 위한 군사 작전 개시를 발표했다. X에 아이티에서 쓰는 크레올어(語)로 “우리는 이미 엘살바도르 갱단을 끝장냈고, 너희도 끝장낼 수 있다”고 썼다.
그래픽=김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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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켈레는 2019년 집권 이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조폭과의 전쟁’을 벌여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9만명을 체포했고, 4만명을 수용할 초대형 감옥도 지었다. 세계 최고 수준이던 살인율이 급감하는 등 성과로 80%를 웃도는 지지율이 이어지자 무기한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까지 고쳤다. 이제는 장기 집권의 바탕이 된 조폭 박멸 작전을 외국에서도 펼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코스타리카·콜롬비아·칠레 등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부켈레의 정책을 따라 한 경우는 있지만 엘살바도르군이 직접 외국에서 조폭을 상대하는 건 아이티가 처음이다.
양측은 소셜미디어에서 서로 경고를 보냈다. 부켈레는 “실종 장병을 무사히 돌려보내라”고 요구하며 응하지 않을 경우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이에 갱단 ‘400 마워조’의 두목은 탄약이 가득 담긴 양동이를 카메라에 비추며 “우리는 갈 곳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싸울 것”이라고 맞받았다.
상당수 중남미 국가가 범죄 조직의 준동으로 고통받지만 아이티는 차원이 다르다.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한밤중 괴한의 총격에 살해된 뒤 치안 공백을 틈타 각지에서 갱단이 발호하기 시작했다. 현재 포르토프랭스의 80~90%를 갱단이 장악하고 있다. 사실상 조폭이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실정이다.
유엔은 지난해 안보리 결의를 통해 아이티 주둔 다국적군의 설립을 승인했다. 이 군대는 평화유지군(Peacekeeping Force)이라는 통상적 명칭이 아닌 갱단진압군(Gang Suppression Force·GSF)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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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정원(5500명)에 턱없이 모자란 2000여 명만 충원되는 등 이름에 걸맞은 수준의 작전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의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티 무장 갱단의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유엔 집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아이티에서 갱단의 준동 또는 진압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이 5700여 명에 달한다. 230명이 납치됐고 1000여 명이 성폭행당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민간인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고 했다. 비영리단체 국제위기그룹(ICG)도 “갱단들은 당국을 협상에 끌어내기 위해 납치와 무차별 폭력에 。。 더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는 “서로 적대시하던 소규모 갱단들이 더 큰 범죄 연합체를 형성하면서 아이티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흐름은 국제적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포르토프랭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두 갱단의 연합체 ‘비브 앙삼’을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부켈레는 취임 후 줄곧 트럼프와 밀착했고, 트럼프 행정부도 엘살바도르군의 아이티 작전에 대해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마이크 왈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엘살바도르군 실종 사건 이후 아이티 갱단을 향해 “연합군을 겁줘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엘파이스는 “실종 군인을 구조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겠다는 작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으며, 자칫 민간인이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작전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미국이 ‘전쟁의 늪’에 끌려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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