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카발 호수는 마야 맘족에게 신앙의 중심지이다.?치카발 화산 경사면에는 지역 주민들이 목욕하고 빨래를 하던 신성한 호수가 있었는데, 신성한 물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계속되자 어머니 대지가 호수를 숨겼다고 하는 마야 전설이 전승된다. 이 호수에서 수영은 신성한 장소에 대한 존중을 위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 이안수
치카발 호수 갈까요?
장소와 시기를 고민하던 나의 백내장 수술을 확정 짓고 나자, 우리 부부의 마음은 오래 풀리지 않던 숙제를 끝낸 듯 한결 홀가분해졌다. 다만 내가 수술을 과테말라에서 받는다는 소식에 염려를 보내 주시는 분이 많아, 그 애정만큼 책임감도 느끼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초조함은 한 .도 없었다. 내 생활 방식에 맞는 인공수정체를 고르는 일부터 수술 전에 살펴야 할 모든 요소까지 담당 의사에게 남김없이 묻고, 의문을 모두 푼 뒤에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결정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도와주신 셀라의 안드레 윤 선생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혹시 치카발 호수(Laguna de Chicabal)에 다녀오셨나요? 아니면 숙소로 찾아뵐까 합니다."
한 시간 뒤, 선생님은 이미 몇 차례 우리 운전을 맡아 준 에드손 미첼(Edson Michel)을 가이드로 데리고 호스텔 문 앞에 모습을 보였다.
치카발 호수는 마야 원주민, 특히 맘(Mam)족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꼽히는 곳이다. 우리도 셀라를 떠나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의 목록에 올려 둔 곳이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호스텔 앞에서 차에 올랐다.
스스로 숨어버린 치카발
과테말라 산 마르틴 사카테페케스(San Martin Sacatepequez) 안, 해발 2700m가 넘는 화산 분화구에 자리한 치카발은 대부분 자욱한 구름과 안개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곳이다.
치카발 호수 둘레에는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이어져 온 마야 제단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이곳에서 맘족들이 '기우제'를 지낸다. 매년 부활절 후 약 40일째 되는 승천일에 거행하는 이 행사는, 구름이 호수에 내려와 물을 머금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비로 내려 옥수수와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해 달라는 기원이다.
▲ 길 위에 놓인 꽃다발.?산길에서 마야 가족을 만났다. 호수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포대기로 등에 업고, 한 손으로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내려오는 길에는 먼저 다녀간 마야 사람들이 바친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일행의 할머니께서 지구의 신에게 바치는 정성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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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올 때와 다른 길을 택해 정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600개가 넘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더 가파른 사면이었다. 숨이 가빠질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호수를 내려다보며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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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는 이런 전승이 전해진다. 호수는 본래 지금의 라구나 세카(Laguna Seca)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성스러운 물을 함부로 대하자 대지가 호수를 거두어 숨겼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호수는 깊은 분화구 안에 있고, 주민들은 이를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곳에서는 수영은 물론 물에 몸을 담그는 모든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나는 맘족이 이곳을 자연과 조상, 우주의 질서와 다시 이어지는 영적 성지로 여기는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길을 나섰다. 그들에게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불경한 태도가 부른 인과로 여기는 자기반성이 있었다. 오늘날 지구 전체의 기후 위기를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해 온 셈이다.
수정체가 혼탁해져 흐려진 시야를 인공수정체로 바꾸는 수술을 앞둔 나 역시 이 반성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출발지에서부터 경치를 탐하거나 등반 경험을 쌓겠다는 마음과는 멀었다. 마음만은 마야의 영적 지도자 아흐키흐(Ajq'ij)를 따르는 맘족의 한 사람이 되어 호수로 향했다.
초록 고추마을
대중교통만으로도 셀라에서 호수까지 갈 수 있다. 미네르바 터미널(Terminal Minerva)에서 호수 아랫마을 산 마르틴 사카테페케스로 간 다음, 픽업트럭으로 방문자센터까지 오르는 길이다. 그래도 승용차를 택한 까닭은 불편을 줄이려는 것 이상이었다. 이 호수의 기우제를 주관하는 맘족 공동체의 마을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산 마르틴 사카테페케스는 행정명이고, 이곳 사람들은 스스로를 '초록 고추마을'이라는 뜻의 '산 마르틴 칠레 베르데(San Martin Chile Verde)'라고 부른다. 이 지역 특산인 녹색 고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자연을 섬기는 사람들의 마을 이름으로는 이쪽에 더 마음이 갔다.
마을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성인의 날(Dia de Todos los Santos)'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숨팡고(Sumpango)와 산티아고 사카테페케스(Santiago Sacatepequez)에서는 해마다 이날이 되면 거대한 원형 연을 하늘로 띄운다. 이들에게 연은 조상을 향해 띄우는 기도이자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매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을 날린다기보다 조상에게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한다.
▲ 치카발호수에 기우제를 지내는 맘족 마을.?마을이름이 ‘초록 고추마을’이라는 뜻의 ‘산 마르틴 칠레 베르데(San Martin Chile Verde)’이다. 이 지역 특산인 녹색 고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자연을 섬기는 사람들의 마을 이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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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운무림 속을 지나는 숲길에 가까웠다.?숲의 공기는 수분으로 가득했고, 이끼와 양치식물과 난초가 오래된 거목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숲이었다. 운무속에서 이런 숲을 살피느라 내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우리를 운전해 주고 안내해 준 에드손 미첼은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아이고~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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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더 들어가자 여러 색으로 도색된 지역 주민을 위한 공설공동묘지(Cementerio General)가 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간 맘족들이 잠든 곳이다.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과테말라에서도 공동묘지가 마을 바깥이 아니라 생활공간 가까이에 있다. 죽은 이를 완전히 떠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마야 세계관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조상은 여전히 공동체의 일부로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들에게 생과 사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다. 이 긴 여정에서 나는 그 생각에 .。 마음이 기운다.
발밑은 불의 땅
방문자센터겸 보호구역 입구의 관리소에 도착하자, 널따란 잔디 구장이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소풍을 온 아랫마을 학생들이었다.
센터의 외벽에 그려진 호수의 지형도는 단순하고 소박해서 오히려 궁금한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담겼다. 호수로 오르는 외길과 전망대의 위치, 호수에 닿는 세 갈래 탐방로(그중 하나는 가파른 계단 코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일주 탐방로까지 알기 쉽게 표시되어 있었다.
지형도에는 치카발을 둘러싼 화산들도 방위에 맞춰 그려져 있었다. 동쪽의 산타마리아 화산(Volcan Santa Maria)과 그 곁에서 지금도 화산재와 연기를 내뿜는 산티아기토 활화산(Volcan Santiaguito), 인근의 라칸돈 화산(Volcan Lacandon), 그리고 과테말라와 중앙아메리카의 최고봉인 타후물코 화산(Volcan Tajumulco)이 먼 배경 속에 함께 있었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많은 화산이 솟은 과테말라 서부 고원, 불의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치카발 호수도 화산 활동으로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인 분화구호(crater lake)다.
분화구 가장자리까지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토리토(Torito, '작은 황소'라는 뜻으로, 산길을 오르는 사륜구동 트럭이나 개조 차량)를 타거나 걸어서 오르는 것이다. 방문자센터는 도보로 약 45분이라고 안내했다. 우리는 운무 가득한 그 길을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마음으로 걷기로 했다.
"아이고~ 괜찮아?"
등산로는 토리토가 오르내리는 비포장 경사로였지만, 운무림 속을 지나는 숲길에 가까웠다. 숲의 공기는 수분으로 가득했고, 이끼와 양치식물과 난초가 오래된 거목에 기대어 살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숲이었다.
나는 숲에 마음을 빼앗긴 채 자꾸 뒤처졌다. 안개는 몇 미터 앞의 일행마저 곧 지워버렸다. 앞서 가던 에드손은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 안갯속 영혼처럼 희미한 목소리로 내게 외쳤다.
"아이고~ 괜찮아?"
몇 해 전 한국으로 연수를 다녀온 그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한국어 두 마디 중 하나였다. 나머지 한마디가 무엇인지 물었다. "배고프지? 많이 먹어!"였다. 두 마디 모두 정이 담긴 말이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정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그의 기억 속 한국은 어머니 같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지 싶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안갯속에서 먼저 들려왔다. 이윽고 원주민 가족이 희뿌연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치카발 호수에 치성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여러 아이들, 아기를 업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함께한 대가족이었다. 혼자 올라도 숨찬 길인데 그들의 표정은 더없이 가뿐해 보였다.
길 가운데에는 꽃송이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고, 어떤 곳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할머니께 그 꽃에 대해 여쭈었다. 기도하러 오르는 사람들이 이 땅의 주인인 대지의 신에게 바친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신은 흙과 나무와 안개까지 포함하는 존재였다.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존중이 곧 그들의 기도였다.
허락받은 만남
분화구 가장자리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도 호수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짙은 운무와 깊은 침묵이 성소의 문을 닫아 둔 듯 호수를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풍경이 아니라, 이 산과 물을 지켜 온 영혼의 기운이었다.
분화구 경사면을 따라 호수로 이어지는 계단은 아득할 만큼 가팔랐다. 내려다보면 허공에 수직으로 매달린 길 같았다. 난간을 단단히 잡고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한 계단 한 계단 내려설 때마다 더 깊은 땅속 침묵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 치카발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동안?머릿속에는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마야인들은 왜 이 호수를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왔을까. 왜 꽃을 들고 이 길을 오르고, 향을 피우고, 머리를 숙였을까.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숨어버린 호수처럼 세상에는 끝내 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자연의 질서도, 우주의 시간도, 인간의 마음도 그러하다. 다음 주 탁해진 눈은 수술 후 다시 회복될 것이다. 그 밝아진 눈으로 지혜를 밝히는 공부에 더 힘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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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안개로 호수를 완전히 가렸다가 다시 열기를 반복했다.?창문을 열었다 닫는 듯 순식간이었다. 보이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다시 보이는 그 호흡 속에서 나는 깊은 영적 울림을 느꼈다. 호수 곳곳에는 생화가 놓여 있다. 수면 위에 떠 있는 꽃들은 선계(仙界)에 피어난 꽃처럼 보였다. 몇 곳에서는 마야의 샤먼, 아흐키(Ajq’ij)가 치성을 드리는 자리가 있었다. 그들이 방금 떠난 자리에는 열기가 남아 있었다. 두어 곳에는 십자가에 꽃이 걸려 있었다. 마야의 영성과 가톨릭 신앙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다. 마야 사람들은 성당에 가고, 다시 영적 지도자 아흐키를 찾아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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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물가에 닿았다. 운무는 여전히 호수를 감추고 있었다. 묵묵히 그 고요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신이 잠시 창문을 열어 주듯, 운무가 천천히 걷히며 호수의 수면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수는 하늘과 숲과 세상의 모든 소리와 움직임까지 침묵 속에 응축해 품은 듯했다. 잠시 뒤 운무가 서서히 밀려와 호수를 감쌌고, 곧 창문이 닫혔다. 다시 신비 속으로 돌아간 호수를 바라보는데 가슴속에 감사가 차올랐다. 그 한 번의 허락만으로 충분했다.
카반과 아흐막
호수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수면에 닿은 운무는 자연의 숨결 같았다. 어디선가 생화 향기가 피어올랐다. 누군가 호수에 바친 꽃이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소망이자 기도였다.
호수 둘레 여러 곳에 마야 사제가 의식을 치르는 제단과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터의 흔적이 보였다. 기도터마다 마야 신성력(神聖曆)의 20개 나왈(Nahual)이 고대 마야 상형문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카반(Kab'an)은 대지와 땅의 움직임, 지혜, 기억, 자연과의 연결을 상징한다. 지구를 신성하게 하고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뜻한다.
아흐막(Ajmaq)은 용서와 속죄, 화해, 조상에 대한 존경,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한다. 마야 전통은 사람이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며 산다고 본다. 아흐막은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영적 에너지를 뜻한다.
그러니 이 둘은 각각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지혜를 구하는 곳', '인간의 실수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호수를 도는 동안 신은 여러 번 창을 열고 닫았다. 나는 마야인의 세계관을 이해하려 애쓰며 그들의 방식대로 지혜와 용서를 구했다. 나에게 기도는 기원이라기보다 다짐이다.
순례가 끝나 갈 즈음,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우리를 따라왔다. 이 깊은 성소에서 홀로 살기로 한 듯했다.
우리는 속세로 돌아가기 위해 600여 개의 계단 앞에 섰다. 몇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보니 호수는 다시 운무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긴 계단을 오르며 곧 받을 눈 수술을 생각했다. 탁해진 눈은 수술 후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치카발이 일깨워 준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 너머의 것들이었다.
"대지에 귀를 기울이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라."
"삶의 여정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라."
치카발 호수와의 대면은 잊히지 않을 만남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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