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은 단순한 음악 콘텐츠가 아니다
스마트폰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행하고 원하는 음악을 검색하면 몇 초 만에 들을 수 있다. 음반을 사는 일은 더 이상 음악을 듣는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음반 산업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바뀌었는데, K-POP 실물 앨범은 여전히 상당한 규모로 팔리는 것이다.
스트리밍 시대에는 음반 자체가 필요하지 않고 실물 음반으로 음악을 청취하기 위해서는 앨범 한 장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K-POP 팬들 사이에서는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는 일이 빈번하게 나타나며 2020년 이후 앨범 판매량과 스트리밍 등을 종합해 집계하는 빌보드 200에서도 K-POP은 꾸준히 강세를 이어오고 있다.
도대체 대중들은 왜 지금 K-POP 앨범을 구입하는가?
앨범 안에 음악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우선 앨범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한국소비자원이 2022년 국내 유료 K-POP 팬덤 활동 경험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음반을 구매하는 이유로 ‘음반 수집’을 꼽은 응답이 75.9%로 가장 많았다. 굿즈 수집은 52.7%, 이벤트 응모는 25.4%였다. 굿즈 수집을 위해 동일 음반을 평균 4.1개, 이벤트 응모를 위해서는 평균 6.7개 구매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음악을 듣는 방법으로는 음원·동영상 스트리밍이 83.8%였고 CD 이용은 5.7%에 그쳤다.
숫자는 이미 K-POP 앨범의 성격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실제 K-POP 앨범은 일반적인 CD와 구성부터 다르다. 포토북과 포스터, 포토카드가 들어가고 멤버별 또는 버전별로 패키지가 나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원이 판매량 기준 주요 K-POP 음반 50종을 조사한 결과 음반 한 개에 포함된 굿즈는 평균 7.8개였고, 96.9%가 랜덤 포토카드를 포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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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음반에는 최대 78종의 포토카드가 제공되는 사례도 있었다.
팬들은 음악은 스트리밍으로 듣고, 음악을 둘러싼 다른 경험을 얻으려 앨범을 산다. K-POP 앨범 한 장에는 음악뿐 아니라 이미지와 소장 가치, 수집의 재미, 팬덤 참여, 아티스트와의 접.이 함께 묶여 있다. 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사는 현상을 단순히 ‘CD를 여러 번 산다'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스트리밍 시대에 앨범이 살아남은 이유
CD가 음악산업의 중심이던 시절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음반을 샀고, 음반을 구매하는 것은 곧 음악을 소유하는 일이었다. 스트리밍은 이 둘을 갈라놓았다. 원하는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음악 자체의 소유 가치는 크게 낮아졌다.
역설적으로 음악을 둘러싼 물성(Physicality)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졌다. 스트리밍으로는 앨범의 패키지를 직접 소장할 수 없고, 아티스트의 사진과 디자인을 물리적으로 간직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디지털 음악에서는 얻기 어려운 개봉과 수집, 진열 같은 경험이 남는다.
K-POP은 바로 이 지.을 앨범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 앨범을 단순히 음악을 담는 매체가 아니라 음악과 이미지, 디자인, 소장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상품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래서 K-POP 앨범은 음악을 듣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음악을 둘러싼 경험을 소유하는 방법이 됐다.
이것이 스트리밍 시대에도 K-POP의 실물 앨범이 살아남은 이유다. 음악 자체는 디지털로 이동했지만, 음악을 기억하고 소장하고 경험하는 방식까지 디지털로 완전히 대체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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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파는 것과 많이 경험하게 하는 것은 다르다
그렇다면 K-POP 실물 앨범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까?
판매량만 놓고 보면 단순한 낙관은 어렵다. 2024년 앨범 판매량은 9,837만 장으로 전년보다 17.4% 감소했지만 해외 수출량은 1,643만 장으로 2.1% 증가했고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3.5%에서 16.7%로 높아졌다. 국내 판매가 줄어드는 동안 해외 시장의 비중은 커진 것이다.
수출액은 더욱 뚜렷하다. 2025년 한국의 음반 수출액은 처음으로 3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 상반기에는 2억5,747만8천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25% 증가했다. 미국이 일본을 제치고 최대 수출 대상국으로 올라섰다. 다만 BTS와 블랙핑크의 컴백이 있었던 시기인 만큼, 이를 장기적인 성장세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세계 시장에서도 실물 음악상품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고 있다. IFPI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실물 음악 매출은 8.0% 증가했고, 바이닐 매출은 13.7% 늘어나 19년 연속 성장했다. 스트리밍이 음악 소비의 중심이 된 이후에도 물리적 음악상품에 대한 수요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K-POP의 특징은 여기에 팬덤의 소비 경험을 결합했다는 데 있다. 바이닐이 음악의 물성과 소장 가치를 중심으로 성장했다면, K-POP 앨범은 음악과 이미지, 수집과 팬덤 경험을 하나의 상품으로 묶었다. 결국 K-POP 실물 앨범의 미래는 단순히 판매량을 다시 늘리는 데 있기보다, 국내 수요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글로벌 팬덤 안에서 새로운 소비 가치를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K-POP의 다음 상품은 음악 다음에 있다
과거 음반산업의 기본 공식이 음악을 만들고 음반을 판매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K-POP은 음악을 중심으로 형성된 팬덤의 관심을 다양한 상품과 경험으로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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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과 포토카드, 굿즈 등 각종 콘텐츠는 서로 분리된 상품이면서도 하나의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음악이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내는 출발.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과 음악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스트리밍은 음악을 듣는 비용과 수고를 낮췄지만 팬들은 음악을 듣는 것에서 나아가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소장하고, 공연에 참여하고, 팬덤 안에서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의 관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K-POP은 이러한 욕구를 앨범과 공연, 상품과 콘텐츠로 연결해왔다.
따라서 앨범 판매량만으로 K-POP의 성과를 판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게 만드는 구조가 존재하는 만큼 판매량이 실제 음악의 청취 규모나 팬덤의 지속적인 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앨범을 얼마나 많이 판매했느냐뿐 아니라 앨범 구매 이후에도 팬들이 음악을 듣고 공연을 찾으며 다양한 경험을 이어가는가에 있다.
결국 K-POP은 음악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심을 실물 앨범과 공연, 굿즈와 콘텐츠로 연결하며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산업이다. 그러나 이 모델의 경쟁력이 계속 유지되려면 상품의 종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각의 상품과 경험이 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다시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K-POP의 다음 성장은 앨범을 몇 장 더 판매하느냐가 아닌 음악을 통해 형성된 팬덤의 관심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하며, 다시 음악을 향한 관심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음악 다음의 상품을 만드는 능력뿐 아니라, 그 상품들이 다시 음악의 가치를 높이도록 연결하는 능력. 그것이 K-POP 산업의 다음 경쟁력이 될 것이다.
김상열 음악학박사·칼럼니스트
의 관심을 다양한